10월 28일 저녁 7시 공주살롱에서..
"광인(狂人)"
목차
광인의 탄생배경과 시대별 광인에 대한 해석
정신병자 동물원 썰
교황과 대립되던 광인
광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심리학
1. 광인의 탄생배경과 시대별 광인에 대한 해석
광인이라는 개념은 인간 사회와 문화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습니다. '광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비이성적이거나 정상적인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그 정의와 인식은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푸코는 광기에 대한 근대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 17세기 중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광기는 이성의 부재, 혹은 ‘비이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비이성적’이라는 형용사로만 쓰이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는 ‘비이성’이 명사로서 실체적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광기가 이성에 의해 비이성으로 규정되고 침묵 속에 대상화된 것은 바로 이 고전주의 시대부터입니다.
17세기 중반, 절대군주의 통치 질서와 관련하여 광인들은 사회 내에서 단절된 구빈원에 수용되었습니다. 루이 14세가 1656년 파리에 ‘종합병원(hopital general)’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내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종합병원’은 오늘날의 의료기관이 아니었으며, 빈곤과 비이성의 표지로 인식된 광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루터와 칼뱅 이후 빈곤은 굴욕과 영광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 통치 질서에 저해되는 부도덕과 비이성의 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로 인해 빈민과 광인은 처벌과 격리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광인들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는 '다른 세상'과 통하는 종교적 현상의 하나로 여겨지거나, 우리의 이성이 언제든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극단적 형태로 간주되었습니다. 당시 광인들은 '광인들의 배'를 타고 멀리 사라졌다가 불쑥 항구나 강의 지류를 따라 마을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무렵 이러한 전통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에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광인은 '이성의 부재'로 여겨지며 부정적 시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Philippe Pinel)**은 18세기 말에 정신병 치료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강조하며, 광인을 쇠사슬에서 풀어주고 그들의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도덕적 치료'를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18세기에는 광인을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그들을 격리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비세트르 병원'이 설립되어 광인들을 격리 수용했으며, 영국에서는 '베들럼 병원'이 광인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러한 시설에서는 종종 비인도적인 처우와 체벌이 이루어졌고, 광인을 구경하는 것이 하나의 유흥거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 런던의 베들럼 병원에서는 광인들이 있는 병원이 마치 '동물원'처럼 취급되어 일반인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습니다. 입장료는 단돈 몇 페니에 불과했지만, 방문객들은 광인들의 일상과 행동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광인들이 겪는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했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2. 정신병자 동물원 썰
18세기 광인에 관한 흥미로운 실화 중 하나는 영국 런던의 베들럼 병원에서 벌어진 일화입니다. 당시 이 병원은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는 시설이었지만, 런던 시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광인들이 있는 이 병원이 마치 '동물원'처럼 취급되어, 일반인들이 구경하러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입장료는 단돈 몇 페니에 불과했지만, 베들럼 병원에서는 방문객들이 광인들의 일상과 행동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부 방문객들은 광인들을 놀리거나 겁주며 즐거움을 느꼈고, 심지어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광인들에게는 분명 고통스러운 환경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오락거리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 한 귀족이 이 병원에 자신의 아들을 입원시키면서 베들럼 병원의 인기와 상업성을 더욱 부각시킨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되자 귀족은 이 병원에 맡기며, 많은 후원금을 제공해 그를 특별히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덕에 아들은 병원의 일반 광인들과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귀족의 미친 아들"을 보러 몰려들었죠.
이런 상황을 두고 당시 사회는 점점 광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처우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시작했으며, 18세기 말에 들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도적 대우와 치료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오늘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는 데 일조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3. 교황과 대립되던 광인
광인은 때때로 교황과 같은 권위적인 존재와 대립되는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광기는 종종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반역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대립 구도는 종교적 맥락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인이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는 종교적 권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의 교회는 광인을 악마의 영향 아래 있거나 이단자로 규정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부 광인들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으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에 이성이 광기를 억압하고 침묵시키면서, 광인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고 격리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이성적인 존재로만 여겨지지 않고, 기존 질서와 대립하며 변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음을 시사합니다. 광인은 종종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고,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으로 존재했으며, 이는 광인의 역할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를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4. 광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심리학
광인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인, 즉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정신과 의학과 심리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광기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필립 피넬은 18세기 말에 정신병 치료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강조하며 광인을 쇠사슬에서 풀어주고, 그들의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도덕적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의 시초로 평가받으며, 광인을 단순히 격리하고 처벌하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치료와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같은 문학가들도 광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생전에 뇌전증을 앓았으며, 당시 정신의학자들은 간질을 타락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규정되지 않았고, '시대에 앞선 사람들(선구자)'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광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가진 창의성과 독특한 성향을 인정하려는 노력이었으며, 이는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톨스토이는 심리 치료에 긍정적이었으며, 그의 철학은 훗날 정신요법과 정신분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광인에 대한 인도적 접근과 심리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인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개인의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광인이 사회적 관계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심리학은 광인과 비광인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광인이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광인에 대한 연구가 더욱 정교해지고 있으며, 광인의 다양한 정신질환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광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그들이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광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광인들이 사회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입니다.
결론
광인이라는 개념은 인간 사회와 문화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그 정의와 인식은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7세기에는 절대군주의 통치 질서 속에서 격리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광인이, 18세기 후반에는 인간의 심리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윌리엄 호가스, '매드하우스(Madhouse)', 1732~35년, 62.5 x 75 cm, 캔버스에 유채, Sir 존 손 박물관, 런던, 영국
이 그림은 18세기 영국 풍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작품으로, 당시 악명 높았던 런던의 정신병원 '베들렘'의 모습을 보여준다.
송마담의 발제를 토대로 참여자들과 대화 내용 요약본
남성 1 : 그래서 그 광기를 얘기할 때, 광기를 얘기할 때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비이성적인 거, 비 이상이잖아요.
이상이란, 그러니까 평범해서 벗어난 것을 정의한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것들을 정의할 때 그 기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신체적 이상이 있다거나, 그러면 그건 평범한 기준에서 벗어난 거니까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든 세대가 지나면서든 어떤 광인을 정의하는 기준이 어떻게 변해왔을지 이런 것들을 좀 생각해본 것 같아요.
요새도 그냥 '미쳤다'라는 얘기, 그런 것들은 매우 많은 곳에 붙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이 시대에 지금 '정신병자'라고 할 때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정신과에서 사이코패스를 구분할 때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광기'를 정의할 때도 어떻게 평범함에서 벗어난 광기로 취급받는지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일반인들이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게 되죠.
17세기의 '강인함'의 정의와 지금의 정의도 다를 텐데, 그런 것도 선천적으로만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요인들로 평가의 기준을 잡을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좀 해본 것 같아요.
여성 1 :과거의 '광기'가 어떻게 광인을 정의하는 것들이 변해왔는지 살펴보는 이유는, 지금의 '광기'를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광인'을 장애인이라던가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지만, 지금은 그런 정의가 어렵더라고요. 과거 1990년대에만 접어들었을 때도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국은 조금 있었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혼 같은 경우 반드시 정신과 진료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미친놈'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죠.
작은 일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정신적인 외상, 스트레스, 장애 등이 생기면 치료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사실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말들이 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죠.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갖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각자 어떤 핸디캡이 있잖아요. 내 마음, 심리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부분이 정신질환은 아니니까 그냥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어서 방치해두고 있는 거죠.
부모님한테 심한 말을 들었다면, 작은 말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각하게 돼요. 어느 누군가를 만나면 몇 일 동안 화를 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데미지가 오게 되죠. 사람들은 그걸 치료하지 않고 들으니까 계속 마음이 아픈 상태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광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려고 하면 그런 부분보다 훨씬 더 넘어서야 된다는 거죠.
송마담 : 말씀하신 것처럼 기준은 매우 중요한데, 그 기준은 객관화되어 있지 않고 시시때때로 혹은 주관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한자를 보면 '미칠 광'이라는 게 그 위에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의미로 설명이 거의 끝나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다 미쳤다고 보게 돼요.
여성 1 : '광狂'도 보면 앞에는 짐승 수 입니다, 뒤에는 광이라는 뜻이어서, 동물적인 면이 강조되죠. 글자가 만들어진 오래전부터 그랬을 텐데,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한 사람의 의지가 존재하고, 그 의지가 모여 시대 정신을 결정하게 되잖아요. 그 시대의 정신에 맞춰 한 가지 상이 압축되죠.
남성 3 :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60년대 70년대에는 전태일 같은 인물이, 1930년대에는 광기를 빠져 있던 독일의 히틀러가 되는 것이구... 그러니까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보통 '광인'이라고 보는 거 같아요. 지금으로 보면 히틀러가 미친 사람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미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히틀러가 정의였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이 있잖아요. '두 눈박이도 외눈박이 사는 마을에 가면 따돌린다'고 정확하게 볼 수 있죠.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전태일 1948년 출생 1970년 사망
송마담 : 다른 사람들이 저희 모임을 모르고서 들으면 저희들이 전체주의자들인줄 알겠어요 ㅋㅋㅋ장난입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혁신을 위해서는 미친 짓을 해야만 효과적인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엘론 머스크가 그런 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때, 그가 페이팔을 만들고 파는 것 자체가 굉장히 대단했죠. 하지만 그 사람 머릿속에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한 행위를 한 거예요. 디자인 씽킹도 러시아에서 시작되었고, 융합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에요. A랑 B를 합쳤을 때 어떻게 합쳐질지 생각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미쳤다'라는 개념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상 속에서 매우 다른 에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성 1 :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초기에는 뛰어난 사람에게 쓰이기도 했죠.
송마담 : 미래 사회에서는 '미쳤다'는 말이 혁신이나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만, 도태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매드맥스 같은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단어가 가장 각광받고, 긍정적인 단어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는 원래 트렌디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거든요.
여성 1 : 우리보다 한참 어르신들조차도 다시 옛날 말을 사용하기 어려워하는데, 요즘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남성 2 : 순수나 온전한 단어들은 점점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변화하고 있어요. 순수하게 만나본다거나 온전한 단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특이점인 것 같아요.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도 많고, '퀄리티' 같은 단어는 영어에서 온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순수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기도 해요.
남성 3 : 이러한 단어들은 기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증명하기도 어렵죠. 순수라는 단어는 순수할 순이라고 하고, 수는 수학에서 공리 같은 거예요.
여성 1 :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시범학교를 해서 아이들에게 아픔을 마주보는 시간을 갖게 했죠. 출석부에서 이름을 골라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들이 잘 자랐어요. 상담과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아픔을 참고 있는 애들은 참잖아요. 선생님이 펑펑 울면서 얘기하면 아이들도 같이 울고, 그렇게 해서 아픔을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지 않아요. 선진국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그런 관심이 부족해요. 청년들에게 정신건강센터가 있어도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하 생략..
송마담 : 다음 단어로는 '낭만'을 준비했어요. '미쳤다'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 뉘앙스가 변하잖아요. '낭만'도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재정립되는 단어 중 하나예요. 사람마다 낭만의 기준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 낭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생각해봤어요.
남자 2 :지금은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낭만이 많아요. DJ DOC의 '풍류' 앨범처럼 낭만과 비슷한 맥락이 있어요.
송마담 : 단어를 재해석하면서 일상이 조금씩 변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보통 특정 사건이 없다면 인식 개선이 어렵고, 누군가와 일을 하지 않으면 깊이 있는 단어를 논하기가 애매해요. 상대방의 선을 넘을 확률이 높아져서죠.
커뮤니티가 발달한 우리나라지만 진정한 담론이나 논의가 부족해요. 새로운 단어를 함축시켜 만들다 보니 기본적인 단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요. 순수, 온전 같은 단어들은 이제 잘 쓰이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변화하고 있어요.
더 이야기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될 것 같으니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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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의 탄생배경과 시대별 광인에 대한 해석
정신병자 동물원 썰
교황과 대립되던 광인
광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심리학
1. 광인의 탄생배경과 시대별 광인에 대한 해석
광인이라는 개념은 인간 사회와 문화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습니다. '광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비이성적이거나 정상적인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그 정의와 인식은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푸코는 광기에 대한 근대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 17세기 중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광기는 이성의 부재, 혹은 ‘비이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비이성적’이라는 형용사로만 쓰이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는 ‘비이성’이 명사로서 실체적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광기가 이성에 의해 비이성으로 규정되고 침묵 속에 대상화된 것은 바로 이 고전주의 시대부터입니다.
17세기 중반, 절대군주의 통치 질서와 관련하여 광인들은 사회 내에서 단절된 구빈원에 수용되었습니다. 루이 14세가 1656년 파리에 ‘종합병원(hopital general)’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내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종합병원’은 오늘날의 의료기관이 아니었으며, 빈곤과 비이성의 표지로 인식된 광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루터와 칼뱅 이후 빈곤은 굴욕과 영광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 통치 질서에 저해되는 부도덕과 비이성의 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로 인해 빈민과 광인은 처벌과 격리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광인들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는 '다른 세상'과 통하는 종교적 현상의 하나로 여겨지거나, 우리의 이성이 언제든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극단적 형태로 간주되었습니다. 당시 광인들은 '광인들의 배'를 타고 멀리 사라졌다가 불쑥 항구나 강의 지류를 따라 마을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무렵 이러한 전통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에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광인은 '이성의 부재'로 여겨지며 부정적 시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Philippe Pinel)**은 18세기 말에 정신병 치료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강조하며, 광인을 쇠사슬에서 풀어주고 그들의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도덕적 치료'를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18세기에는 광인을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그들을 격리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비세트르 병원'이 설립되어 광인들을 격리 수용했으며, 영국에서는 '베들럼 병원'이 광인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러한 시설에서는 종종 비인도적인 처우와 체벌이 이루어졌고, 광인을 구경하는 것이 하나의 유흥거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 런던의 베들럼 병원에서는 광인들이 있는 병원이 마치 '동물원'처럼 취급되어 일반인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습니다. 입장료는 단돈 몇 페니에 불과했지만, 방문객들은 광인들의 일상과 행동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광인들이 겪는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했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2. 정신병자 동물원 썰
18세기 광인에 관한 흥미로운 실화 중 하나는 영국 런던의 베들럼 병원에서 벌어진 일화입니다. 당시 이 병원은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는 시설이었지만, 런던 시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광인들이 있는 이 병원이 마치 '동물원'처럼 취급되어, 일반인들이 구경하러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입장료는 단돈 몇 페니에 불과했지만, 베들럼 병원에서는 방문객들이 광인들의 일상과 행동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부 방문객들은 광인들을 놀리거나 겁주며 즐거움을 느꼈고, 심지어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광인들에게는 분명 고통스러운 환경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오락거리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 한 귀족이 이 병원에 자신의 아들을 입원시키면서 베들럼 병원의 인기와 상업성을 더욱 부각시킨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되자 귀족은 이 병원에 맡기며, 많은 후원금을 제공해 그를 특별히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덕에 아들은 병원의 일반 광인들과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귀족의 미친 아들"을 보러 몰려들었죠.
이런 상황을 두고 당시 사회는 점점 광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처우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시작했으며, 18세기 말에 들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도적 대우와 치료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오늘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는 데 일조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3. 교황과 대립되던 광인
광인은 때때로 교황과 같은 권위적인 존재와 대립되는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광기는 종종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반역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대립 구도는 종교적 맥락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인이 기존 질서와 관습을 벗어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는 종교적 권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의 교회는 광인을 악마의 영향 아래 있거나 이단자로 규정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부 광인들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으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에 이성이 광기를 억압하고 침묵시키면서, 광인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고 격리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이성적인 존재로만 여겨지지 않고, 기존 질서와 대립하며 변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음을 시사합니다. 광인은 종종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고,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으로 존재했으며, 이는 광인의 역할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를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4. 광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심리학
광인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인, 즉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정신과 의학과 심리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광기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필립 피넬은 18세기 말에 정신병 치료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강조하며 광인을 쇠사슬에서 풀어주고, 그들의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도덕적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의 시초로 평가받으며, 광인을 단순히 격리하고 처벌하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치료와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같은 문학가들도 광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생전에 뇌전증을 앓았으며, 당시 정신의학자들은 간질을 타락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규정되지 않았고, '시대에 앞선 사람들(선구자)'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광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가진 창의성과 독특한 성향을 인정하려는 노력이었으며, 이는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톨스토이는 심리 치료에 긍정적이었으며, 그의 철학은 훗날 정신요법과 정신분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광인이 단순히 비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광인에 대한 인도적 접근과 심리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인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개인의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광인이 사회적 관계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심리학은 광인과 비광인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광인이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광인에 대한 연구가 더욱 정교해지고 있으며, 광인의 다양한 정신질환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광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그들이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광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광인들이 사회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입니다.
결론
광인이라는 개념은 인간 사회와 문화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그 정의와 인식은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7세기에는 절대군주의 통치 질서 속에서 격리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광인이, 18세기 후반에는 인간의 심리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윌리엄 호가스, '매드하우스(Madhouse)', 1732~35년, 62.5 x 75 cm, 캔버스에 유채, Sir 존 손 박물관, 런던, 영국
이 그림은 18세기 영국 풍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작품으로, 당시 악명 높았던 런던의 정신병원 '베들렘'의 모습을 보여준다.
송마담의 발제를 토대로 참여자들과 대화 내용 요약본
남성 1 : 그래서 그 광기를 얘기할 때, 광기를 얘기할 때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비이성적인 거, 비 이상이잖아요.
이상이란, 그러니까 평범해서 벗어난 것을 정의한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것들을 정의할 때 그 기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신체적 이상이 있다거나, 그러면 그건 평범한 기준에서 벗어난 거니까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든 세대가 지나면서든 어떤 광인을 정의하는 기준이 어떻게 변해왔을지 이런 것들을 좀 생각해본 것 같아요.
요새도 그냥 '미쳤다'라는 얘기, 그런 것들은 매우 많은 곳에 붙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이 시대에 지금 '정신병자'라고 할 때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정신과에서 사이코패스를 구분할 때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광기'를 정의할 때도 어떻게 평범함에서 벗어난 광기로 취급받는지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일반인들이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게 되죠.
17세기의 '강인함'의 정의와 지금의 정의도 다를 텐데, 그런 것도 선천적으로만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요인들로 평가의 기준을 잡을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좀 해본 것 같아요.
여성 1 :과거의 '광기'가 어떻게 광인을 정의하는 것들이 변해왔는지 살펴보는 이유는, 지금의 '광기'를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광인'을 장애인이라던가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지만, 지금은 그런 정의가 어렵더라고요. 과거 1990년대에만 접어들었을 때도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국은 조금 있었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혼 같은 경우 반드시 정신과 진료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미친놈'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죠.
작은 일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정신적인 외상, 스트레스, 장애 등이 생기면 치료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사실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말들이 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죠.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갖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각자 어떤 핸디캡이 있잖아요. 내 마음, 심리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부분이 정신질환은 아니니까 그냥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어서 방치해두고 있는 거죠.
부모님한테 심한 말을 들었다면, 작은 말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각하게 돼요. 어느 누군가를 만나면 몇 일 동안 화를 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데미지가 오게 되죠. 사람들은 그걸 치료하지 않고 들으니까 계속 마음이 아픈 상태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광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려고 하면 그런 부분보다 훨씬 더 넘어서야 된다는 거죠.
송마담 : 말씀하신 것처럼 기준은 매우 중요한데, 그 기준은 객관화되어 있지 않고 시시때때로 혹은 주관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한자를 보면 '미칠 광'이라는 게 그 위에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의미로 설명이 거의 끝나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다 미쳤다고 보게 돼요.
여성 1 : '광狂'도 보면 앞에는 짐승 수 입니다, 뒤에는 광이라는 뜻이어서, 동물적인 면이 강조되죠. 글자가 만들어진 오래전부터 그랬을 텐데,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한 사람의 의지가 존재하고, 그 의지가 모여 시대 정신을 결정하게 되잖아요. 그 시대의 정신에 맞춰 한 가지 상이 압축되죠.
남성 3 :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60년대 70년대에는 전태일 같은 인물이, 1930년대에는 광기를 빠져 있던 독일의 히틀러가 되는 것이구... 그러니까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보통 '광인'이라고 보는 거 같아요. 지금으로 보면 히틀러가 미친 사람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미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히틀러가 정의였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이 있잖아요. '두 눈박이도 외눈박이 사는 마을에 가면 따돌린다'고 정확하게 볼 수 있죠.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전태일 1948년 출생 1970년 사망
송마담 : 다른 사람들이 저희 모임을 모르고서 들으면 저희들이 전체주의자들인줄 알겠어요 ㅋㅋㅋ장난입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혁신을 위해서는 미친 짓을 해야만 효과적인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엘론 머스크가 그런 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때, 그가 페이팔을 만들고 파는 것 자체가 굉장히 대단했죠. 하지만 그 사람 머릿속에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한 행위를 한 거예요. 디자인 씽킹도 러시아에서 시작되었고, 융합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에요. A랑 B를 합쳤을 때 어떻게 합쳐질지 생각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미쳤다'라는 개념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상 속에서 매우 다른 에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성 1 :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초기에는 뛰어난 사람에게 쓰이기도 했죠.
송마담 : 미래 사회에서는 '미쳤다'는 말이 혁신이나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만, 도태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매드맥스 같은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단어가 가장 각광받고, 긍정적인 단어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는 원래 트렌디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거든요.
여성 1 : 우리보다 한참 어르신들조차도 다시 옛날 말을 사용하기 어려워하는데, 요즘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남성 2 : 순수나 온전한 단어들은 점점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변화하고 있어요. 순수하게 만나본다거나 온전한 단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특이점인 것 같아요.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도 많고, '퀄리티' 같은 단어는 영어에서 온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순수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기도 해요.
남성 3 : 이러한 단어들은 기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증명하기도 어렵죠. 순수라는 단어는 순수할 순이라고 하고, 수는 수학에서 공리 같은 거예요.
여성 1 :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시범학교를 해서 아이들에게 아픔을 마주보는 시간을 갖게 했죠. 출석부에서 이름을 골라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들이 잘 자랐어요. 상담과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아픔을 참고 있는 애들은 참잖아요. 선생님이 펑펑 울면서 얘기하면 아이들도 같이 울고, 그렇게 해서 아픔을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지 않아요. 선진국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그런 관심이 부족해요. 청년들에게 정신건강센터가 있어도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하 생략..
송마담 : 다음 단어로는 '낭만'을 준비했어요. '미쳤다'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 뉘앙스가 변하잖아요. '낭만'도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재정립되는 단어 중 하나예요. 사람마다 낭만의 기준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 낭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생각해봤어요.
남자 2 :지금은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낭만이 많아요. DJ DOC의 '풍류' 앨범처럼 낭만과 비슷한 맥락이 있어요.
송마담 : 단어를 재해석하면서 일상이 조금씩 변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보통 특정 사건이 없다면 인식 개선이 어렵고, 누군가와 일을 하지 않으면 깊이 있는 단어를 논하기가 애매해요. 상대방의 선을 넘을 확률이 높아져서죠.
커뮤니티가 발달한 우리나라지만 진정한 담론이나 논의가 부족해요. 새로운 단어를 함축시켜 만들다 보니 기본적인 단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요. 순수, 온전 같은 단어들은 이제 잘 쓰이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변화하고 있어요.
더 이야기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될 것 같으니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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