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단한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냥 업(業)으로는 이제 융합상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융합상품이라 함은 도자기도 있고 섬유도 있고 뭐 이런저런 목공이라던지 여러 요소와 소재들을 가지고 상품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곁들여서 전통적인 기법이라던지 전통적인 요소들을 활용해 넣어서 공예품을 만드는데 너무 옛날식의 공예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어서 그런 것을 살려서 작업을 합니다. 느루지기의 강설아 입니다.
섬유전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여러 다른 분야와 융합하고 확장해서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신 생각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하셨나요 계기가 있을까요
2019년 즈음에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반려동물산업 쪽으로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사료라던지 여러 가지 디자인 업무를 맡으면서 여러 아이디어들을 축적하면서 조금씩 일하다가 한국디자인문화진흥원 창업프로그램에 지원하며 전통공예가 분야로 신청 "느루지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반 2년 동안 반려동물가족을 위한 공예품들을 만드는 일을 주로 했어요. 전통매듭 고양이 장난감 만들었던 것이 한 가지 예시로 기억에 남는데 중국에서 오는 조잡한 상품 같은 것들이 시장에 들어오는데 1회용으로 잠깐 쓰다가 버리게 되거든요. 결국에는 잡동사니가 되어서 단기간에 쓸모가 없어져버리는데, 다회용으로 내구성을 가지게끔 상품을 구성하고 후에 폐기를 하더라도 환경에 영향이 적은 도자기라던지 본드 대신 매듭을 활용한다던지 바느질등의 공예법을 살려서 상품을 냈었죠.
좀 더 흥미가 돋는 일을 찾기 위해서 공모전 등에 많이 참가했었어요. 오색빛깔공주라는 타이틀로 활동했던 작품들이 좋은 평가들을 얻어서 그런 부분에서 자신감이라던지 성과를 얻어서 전통공예품 분야에 점점 발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사업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요.
아이가 없어도 결혼을 안 했어도 저는 섬유 작업을 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워낙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남들은 어떻게 보면 뭐 좀 시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배워야 될 상황에 몰리면 부담스러워서 혹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 포기 하실지는 몰라도 저는 그게 오히려 더 가슴 설레더라구요. 그래서 어디서 교육을 지원한다던지 어떤 기회를 제공해주신다던지 하면 저는 너무 설레요.
공주에서 계속 활동을 하셨던 건가요? 미래유산상품개발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어떤 경로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운전하다가 우연찮게 플래카드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고 대학졸업 후 공주에 정착을 했다고 볼 수 있으니 꽤 오래되었죠. 인쇄 관련 회사를 다녔다가 공예 쪽으로 완전히 넘어오면서 관련 공모나 지원 사업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유산상품개발 산업같이 지역을 담아내는 프로그램 자체가 잘 없다고 생각해요. 아카이빙 된 공주의, 남겨져야 할 오래된 자원들을 활용하는 게 주제였는데, 기존에 생각했던 카테고리와 다르게 '공주'만을 위한 아이템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유구인견의 부활의 주제가 눈에 들었고 섬유로 응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했었어요. 백제 출토 유물이나 유형사물이 아닌 무형유산 혹은 다른 주제로 관광상품을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유구인견에 대한 정보를 독자분들에게 어느 정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3대 인견 중에 풍기 강화 등의 지역과 함께 유구인조견사가 유명해요. 어르신세대에서 인견이 익숙하시고 많이들 알고 계신데, 요즘 40대에서만 들어서도 인견자체를 잘 모르는 세대가 된 것 같아요. 유구가 인조견사로 유명한 지도 잘 모르셨던 것 같고, 유구의 지역적 역사를 잠깐 조명해 보면 한국전쟁당시 북쪽 직조업자들의 피난. 유구에 정착하는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섬유 호황기에 부흥했다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유구도 함께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된 거죠. 인견제직을 하더라도 규모가 현재는 많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그런 역사적인 배경들을 공부하면서 관광적인 요소와 함께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견 자체가 면 소재나 나무 등을 화학용재로 녹여서 만드는데 어떻게 보면, 천연이라기보다는 친환경이라고 봐야 할까요. 화학작용이 있긴 하지만 천연섬유라고 해석해도 무리 없을 것 같아요. 다시 인견이 각광을 받는다면 유구의 역사적 배경과 품질이 우수함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봐요.
유구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색동재직업체가 아직 남아있기도 해요. 유구의 특색으로 수국도 유명해서 관련 축제도 있는 것처럼 매력적인 동네예요. 공주에 남아있는 섬유마을 같은 느낌으로(웃음)
상품개발이나 브랜드에 담고자 하시는 가치관이나 철학들이 있으실까요? 어떤 생각들을 작업에 담으시나요?
느루지기라는 브랜드의 이념으로 "좋은 것을 오래오래"라는 말을 하는데,
요즘의 시대는 빠른 것과 저렴한 것으로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것을 대량생산의 결과물로 구입을 하는 것들일 텐데, 정반대로 그럴수록 수공예의 가치가 빛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라고 역으로 생각하기도 해요. 정성과 노력을 담은 것들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거죠.
어렸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10대를 지나 30대 40대에 접어들면서 그저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갔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제가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쭉 돌아보면 대부분은 쉽게 만들어지고 그렇기에 쉽게 버려지는 는 경향들이 있더라고요. 흔하게 취급되는 것들보다 사람의 손으로 과정을 들여서 시간을 쏟은 물건들은 간직하고 아끼게 되는 힘이 있고, 지금의 시장과 지금의 공예에는 이러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의 대표라면 저렴한 금액에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만, '작가'의 입장에 조금 더 이입을 하게 돼요. 마치 요리처럼 내 가족과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허투루 할 수 없잖아요.
시간의 가치를 절하하는 시대를 지나고 나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가치가 결국은 높아질 것이고, 시간을 담는 과정이 지속되었을 때에 (시간을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잖아요?)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많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확실하신 순간이 있으실까요?
저는 진짜로 제 천성이라고 생각을 해요 (웃음) 어렸을 때의 경험인데, 이불 홑천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을 한참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던 것이 내재되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섬유공학이라던지 고분자 분야나 마케팅을 선택하지 않고 디자인 쪽으로 선택을 했던 것도, 인쇄 업무를 하게 되면서도 디자인을 놓지 못했던 것도... 제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분야라고 생각해요.
하나에 몰입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적인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할 수도 있지 않냐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하니까요. 가족끼리 돕기도 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면 충분한 것 같아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떠올리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가족들이죠 저는 지금 현재 그 친정 부모님 하고 같이 살아요. 아이가 셋이기도 하고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사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챙겨주시지 않았다면 사실 힘들었을 거예요 둘이서 이렇게 일을 하기가. 근데 부모님이 선뜻 들어와서 같이 살자라고 얘기해 주셨고 그런 부분에서 동의를 해주고 회사에서 나와 창업을 도전하는 가운데서도 많이 도움을 받았죠.
제가 작업을 해야 되고 창작품을 만들어야 되고 그럼 이제 조금 더 아이들을 돌봐주시면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그래서 주거 비용이라든지 경제적인 부분들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친정집에 들어오면서 그리고 이제 우연찮게 또 셋째가 찾아오는 시기가 있어 가지고 당시에는 부모님께서 걱정은 하셨어요. 이제 막 공예가로서 사업을 펼치려는데 힘들지 않겠냐는 지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죠
요즘의 집안 풍경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이제 뭐 학원 학교 보내고 어린이집 보내고 그 시간에 전 작업을 하고
저녁에 오면 또 아이들 케어에서 하고 아침에 등교시키면 또 저는 제 작업을 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아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살면서 막연하게 아이 한 세넷은 나야 되겠다 생각을 했어요.(웃음)
아이 욕심은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근데 제 실제로 그렇게 살게 될 줄을 몰랐죠. 아이들이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크게 리프레쉬할 수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뭐 일을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도 모든 분들에게 이렇다 저렇다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좋은 선택이 맞았던 것 같아요.
배움에 있어서 매우 즐겁다고 하셨는데 공예 말고 해당 전공 분야 말고 혹시 다른데 관심을 두거나 최근에 이제 배워본 게 있으실까요?
예를 들어 옛날 단청 그리기 수업이 있었는데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적극적으로 시간을 알아봤는데 이번에 상품개발하는 시간하고 너무 겹쳐 가지고 아쉽게 그러지 못했는데. 몇몇 가지 생각이 들긴 하네요. 전통에 대한 기법 가야금도 사실 수업도 관심 있게 찾아보기도 했고, 저는 중학교 때 가야금을 메고 고등학교 때 양금을 배웠는데, 그래서 이런 전통적인 악기도 어렸을 때 접해서 그런지 몰라도이 전통에 대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거에 되게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것 같아요.
그런 기법이든 전통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시는 연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 경험이든 혹은 누구나 다 그런 경험 있잖아요. 박물관에 가는 경험.
저는 그런 공간에 그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서 아이들도 많이 자주 데리고 갑니다. 공주박물관이라든지 아니면 근교에 놀러 가더라도 박물관 위주로 저의 애들을 데리고 가는데, 어떻게 보면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 우리가 그걸 눈으로 직접 보는 거잖아요. 그 당시에 사람이 만들었던 그릇 사람이 사람이 썼던 도구들과 벼루 붓 이런 것들 볼 때마다 저는 굉장한 어떤 영감이나 인상을 받았던 것이 너무 컸었어요. 그래서 그 전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멀리서 이렇게 넌지시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직접 눈으로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내가 악기를 불면서 내가 직접 그때 옛날에 악보를 연주를 한다고 한다던가 이런 것들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경험자가 되다 보니까 "전통이란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구나"
이런 것들이 나한테 주는 설렘을 남들보다 좀 더 아는 것이겠죠. 몸이 알고 머리가 알고...
그래서 이런 키워드가 계속 저한테 자극을 주고 리프레쉬되는 그런 경험들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은 더 찾아다닌 것처럼.
공주를 활동 배경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공주에 대한 작가님의 개인적인 생각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아이를 셋을 낳으면서 시 차원에서 지원해주시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공주를 거의 신봉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웃음) 그런 제도적인 부분을 덜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희 첫째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도 보냈어요. 그 역사가 100년이나 된 학교인데, 100년 됐으면 이제 학교도 이제 허름할 거 아니에요? 학교 자체가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기도 하고, 제가 어렸을 적 한 학급에 60명이었을 시절을 생각해 보면서 지금 굉장히 자유롭고 놀이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면서도 집중되게 교육받는 모습을 보고, 그런 것들을 이제 직접적으로 눈으로 보고 아이가 그렇게 크는 걸 보니까 공주라는 그 도시에 호감도와 매력들이 계속해서 커졌던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학교를 가까이 다녀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기억이 없이 학교가 다 멀었고 대학마저도 꽤나 멀리 통학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다녀야 하나라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아이들이 당연히 이렇게 가까이서 걸어서 학교를 간다라는 그런 개념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불편함을 겪더라도 어떻게 보면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을 덜어내고 생각하면 정말 공주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학원이 없다는 의견들도 (도심이 아니고선 학원이 없거든요) 저희 집 근처에도 학원이 없어요.
그래서 대신 그것들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방과 후 학교가 생기고 이런 기회를 이제 나라에서 주다 보니까 저는 오히려 공주라는 도시가 학생들 적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세종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방과 후 교실을 운영을 하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가지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학교에 뭐 10명이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데 4-50명이 신청해 가지고 떨어지면 사교육을 더 시켜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사교육이 늘어서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공주는 그런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충분히 아이들마다 경험을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너무 공주를 작가와 예술 활동가로서의 바라본 시점이 아니라 육아의 최전선에서 해석하고 생각했어서 너무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을까요(웃음)
물론 공주가 이런 역사가 있고 문화유적도 많고... 그런 도시인 거는 저도 너무 매력적이죠. 누구나 알고 계시기도 하고... 매력적인데 육아의 입장과는 정 반대로 공예 작가로서 이미 작가분들이 공주에는 너무 많아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한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주가 품고 있는 헤리티지와 그런 것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결국은 그래서 작가분들도 포진이 많이 되어 있어요. 역사도 오래된 그 도예촌이라든지 뭐 충남의 다른 지역에 계시는 작가분들도 포진되어 있으니까 그런 분들이 다수 계시는 거에 이제 비례해서 어떤 프로그램이던지 지원에 있어서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저는 그게 매력이 될 수 있다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분들 사이에서 뭔가 제 작품이 기억이 되고 인정이 받는 순간이 또 기회가 되면 더 감동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공주는 이제는 뭐랄까, 기성 작가분들의 그런 기술적인 면은 너무 이제 더할 나위 없이 고도화되어 올라오셨는데, 그를 뒷받침하는 아이디어적인 면에서의 포화된 시점에 작업의 난이도 부분에서 너무 극한을 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참여와 상품개발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 있으실까요?
유구에 직접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발달된 도시라는 느낌보다는 읍규모의 작은 마을임에도 엄청 매력 있거든요. 처음 유구에 자료 조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섬유 전시관 같은 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구인견에 대해서 이렇게 힘을 쏟으면서도 전시의 구성이나 도시 자체적으로 이제는 힘이 많이 약해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알아보면 볼수록 시간이 지나 회색으로 빛바랜 것 같지만 아직 그 시간 속에 색동과도 같은 그 색을 결코 잃지 않았다고 보게 되었어요. 인견과 색동으로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상품을 낼까 고민을 많이 하면 '괴불 장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비전을 품고 계신가요?
저는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소박한 생각인데, '호호당'이나 일본의 '소우소우'와 같은 매력적인 브랜드들이 많이 생각이 나네요.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걸 잘하는 브랜드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우소우'에서는 기모노 같은 전통 의상을 지금에 맞게 바꿔가는 것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처럼 '느루지기'도 이런 브랜드처럼 꾸준 조금씩 성장해서, 단순히 단기간에 성공한다기보다는 제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게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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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단한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냥 업(業)으로는 이제 융합상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융합상품이라 함은 도자기도 있고 섬유도 있고 뭐 이런저런 목공이라던지 여러 요소와 소재들을 가지고 상품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곁들여서 전통적인 기법이라던지 전통적인 요소들을 활용해 넣어서 공예품을 만드는데 너무 옛날식의 공예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어서 그런 것을 살려서 작업을 합니다. 느루지기의 강설아 입니다.
섬유전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여러 다른 분야와 융합하고 확장해서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신 생각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하셨나요 계기가 있을까요
2019년 즈음에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반려동물산업 쪽으로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사료라던지 여러 가지 디자인 업무를 맡으면서 여러 아이디어들을 축적하면서 조금씩 일하다가 한국디자인문화진흥원 창업프로그램에 지원하며 전통공예가 분야로 신청 "느루지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반 2년 동안 반려동물가족을 위한 공예품들을 만드는 일을 주로 했어요. 전통매듭 고양이 장난감 만들었던 것이 한 가지 예시로 기억에 남는데 중국에서 오는 조잡한 상품 같은 것들이 시장에 들어오는데 1회용으로 잠깐 쓰다가 버리게 되거든요. 결국에는 잡동사니가 되어서 단기간에 쓸모가 없어져버리는데, 다회용으로 내구성을 가지게끔 상품을 구성하고 후에 폐기를 하더라도 환경에 영향이 적은 도자기라던지 본드 대신 매듭을 활용한다던지 바느질등의 공예법을 살려서 상품을 냈었죠.
좀 더 흥미가 돋는 일을 찾기 위해서 공모전 등에 많이 참가했었어요. 오색빛깔공주라는 타이틀로 활동했던 작품들이 좋은 평가들을 얻어서 그런 부분에서 자신감이라던지 성과를 얻어서 전통공예품 분야에 점점 발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사업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요.
아이가 없어도 결혼을 안 했어도 저는 섬유 작업을 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워낙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남들은 어떻게 보면 뭐 좀 시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배워야 될 상황에 몰리면 부담스러워서 혹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 포기 하실지는 몰라도 저는 그게 오히려 더 가슴 설레더라구요. 그래서 어디서 교육을 지원한다던지 어떤 기회를 제공해주신다던지 하면 저는 너무 설레요.
공주에서 계속 활동을 하셨던 건가요? 미래유산상품개발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어떤 경로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운전하다가 우연찮게 플래카드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고 대학졸업 후 공주에 정착을 했다고 볼 수 있으니 꽤 오래되었죠. 인쇄 관련 회사를 다녔다가 공예 쪽으로 완전히 넘어오면서 관련 공모나 지원 사업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유산상품개발 산업같이 지역을 담아내는 프로그램 자체가 잘 없다고 생각해요. 아카이빙 된 공주의, 남겨져야 할 오래된 자원들을 활용하는 게 주제였는데, 기존에 생각했던 카테고리와 다르게 '공주'만을 위한 아이템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유구인견의 부활의 주제가 눈에 들었고 섬유로 응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했었어요. 백제 출토 유물이나 유형사물이 아닌 무형유산 혹은 다른 주제로 관광상품을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유구인견에 대한 정보를 독자분들에게 어느 정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3대 인견 중에 풍기 강화 등의 지역과 함께 유구인조견사가 유명해요. 어르신세대에서 인견이 익숙하시고 많이들 알고 계신데, 요즘 40대에서만 들어서도 인견자체를 잘 모르는 세대가 된 것 같아요. 유구가 인조견사로 유명한 지도 잘 모르셨던 것 같고, 유구의 지역적 역사를 잠깐 조명해 보면 한국전쟁당시 북쪽 직조업자들의 피난. 유구에 정착하는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섬유 호황기에 부흥했다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유구도 함께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된 거죠. 인견제직을 하더라도 규모가 현재는 많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그런 역사적인 배경들을 공부하면서 관광적인 요소와 함께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견 자체가 면 소재나 나무 등을 화학용재로 녹여서 만드는데 어떻게 보면, 천연이라기보다는 친환경이라고 봐야 할까요. 화학작용이 있긴 하지만 천연섬유라고 해석해도 무리 없을 것 같아요. 다시 인견이 각광을 받는다면 유구의 역사적 배경과 품질이 우수함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봐요.
유구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색동재직업체가 아직 남아있기도 해요. 유구의 특색으로 수국도 유명해서 관련 축제도 있는 것처럼 매력적인 동네예요. 공주에 남아있는 섬유마을 같은 느낌으로(웃음)
상품개발이나 브랜드에 담고자 하시는 가치관이나 철학들이 있으실까요? 어떤 생각들을 작업에 담으시나요?
느루지기라는 브랜드의 이념으로 "좋은 것을 오래오래"라는 말을 하는데,
요즘의 시대는 빠른 것과 저렴한 것으로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것을 대량생산의 결과물로 구입을 하는 것들일 텐데, 정반대로 그럴수록 수공예의 가치가 빛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라고 역으로 생각하기도 해요. 정성과 노력을 담은 것들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거죠.
어렸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10대를 지나 30대 40대에 접어들면서 그저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갔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제가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쭉 돌아보면 대부분은 쉽게 만들어지고 그렇기에 쉽게 버려지는 는 경향들이 있더라고요. 흔하게 취급되는 것들보다 사람의 손으로 과정을 들여서 시간을 쏟은 물건들은 간직하고 아끼게 되는 힘이 있고, 지금의 시장과 지금의 공예에는 이러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의 대표라면 저렴한 금액에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만, '작가'의 입장에 조금 더 이입을 하게 돼요. 마치 요리처럼 내 가족과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허투루 할 수 없잖아요.
시간의 가치를 절하하는 시대를 지나고 나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가치가 결국은 높아질 것이고, 시간을 담는 과정이 지속되었을 때에 (시간을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잖아요?)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많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확실하신 순간이 있으실까요?
저는 진짜로 제 천성이라고 생각을 해요 (웃음) 어렸을 때의 경험인데, 이불 홑천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을 한참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던 것이 내재되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섬유공학이라던지 고분자 분야나 마케팅을 선택하지 않고 디자인 쪽으로 선택을 했던 것도, 인쇄 업무를 하게 되면서도 디자인을 놓지 못했던 것도... 제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분야라고 생각해요.
하나에 몰입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적인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할 수도 있지 않냐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하니까요. 가족끼리 돕기도 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면 충분한 것 같아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떠올리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가족들이죠 저는 지금 현재 그 친정 부모님 하고 같이 살아요. 아이가 셋이기도 하고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사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챙겨주시지 않았다면 사실 힘들었을 거예요 둘이서 이렇게 일을 하기가. 근데 부모님이 선뜻 들어와서 같이 살자라고 얘기해 주셨고 그런 부분에서 동의를 해주고 회사에서 나와 창업을 도전하는 가운데서도 많이 도움을 받았죠.
제가 작업을 해야 되고 창작품을 만들어야 되고 그럼 이제 조금 더 아이들을 돌봐주시면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그래서 주거 비용이라든지 경제적인 부분들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친정집에 들어오면서 그리고 이제 우연찮게 또 셋째가 찾아오는 시기가 있어 가지고 당시에는 부모님께서 걱정은 하셨어요. 이제 막 공예가로서 사업을 펼치려는데 힘들지 않겠냐는 지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죠
요즘의 집안 풍경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이제 뭐 학원 학교 보내고 어린이집 보내고 그 시간에 전 작업을 하고
저녁에 오면 또 아이들 케어에서 하고 아침에 등교시키면 또 저는 제 작업을 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아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살면서 막연하게 아이 한 세넷은 나야 되겠다 생각을 했어요.(웃음)
아이 욕심은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근데 제 실제로 그렇게 살게 될 줄을 몰랐죠. 아이들이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크게 리프레쉬할 수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뭐 일을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도 모든 분들에게 이렇다 저렇다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좋은 선택이 맞았던 것 같아요.
배움에 있어서 매우 즐겁다고 하셨는데 공예 말고 해당 전공 분야 말고 혹시 다른데 관심을 두거나 최근에 이제 배워본 게 있으실까요?
예를 들어 옛날 단청 그리기 수업이 있었는데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적극적으로 시간을 알아봤는데 이번에 상품개발하는 시간하고 너무 겹쳐 가지고 아쉽게 그러지 못했는데. 몇몇 가지 생각이 들긴 하네요. 전통에 대한 기법 가야금도 사실 수업도 관심 있게 찾아보기도 했고, 저는 중학교 때 가야금을 메고 고등학교 때 양금을 배웠는데, 그래서 이런 전통적인 악기도 어렸을 때 접해서 그런지 몰라도이 전통에 대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거에 되게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것 같아요.
그런 기법이든 전통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시는 연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 경험이든 혹은 누구나 다 그런 경험 있잖아요. 박물관에 가는 경험.
저는 그런 공간에 그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서 아이들도 많이 자주 데리고 갑니다. 공주박물관이라든지 아니면 근교에 놀러 가더라도 박물관 위주로 저의 애들을 데리고 가는데, 어떻게 보면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 우리가 그걸 눈으로 직접 보는 거잖아요. 그 당시에 사람이 만들었던 그릇 사람이 사람이 썼던 도구들과 벼루 붓 이런 것들 볼 때마다 저는 굉장한 어떤 영감이나 인상을 받았던 것이 너무 컸었어요. 그래서 그 전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멀리서 이렇게 넌지시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직접 눈으로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내가 악기를 불면서 내가 직접 그때 옛날에 악보를 연주를 한다고 한다던가 이런 것들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경험자가 되다 보니까 "전통이란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구나"
이런 것들이 나한테 주는 설렘을 남들보다 좀 더 아는 것이겠죠. 몸이 알고 머리가 알고...
그래서 이런 키워드가 계속 저한테 자극을 주고 리프레쉬되는 그런 경험들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은 더 찾아다닌 것처럼.
공주를 활동 배경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공주에 대한 작가님의 개인적인 생각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아이를 셋을 낳으면서 시 차원에서 지원해주시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공주를 거의 신봉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웃음) 그런 제도적인 부분을 덜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희 첫째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도 보냈어요. 그 역사가 100년이나 된 학교인데, 100년 됐으면 이제 학교도 이제 허름할 거 아니에요? 학교 자체가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기도 하고, 제가 어렸을 적 한 학급에 60명이었을 시절을 생각해 보면서 지금 굉장히 자유롭고 놀이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면서도 집중되게 교육받는 모습을 보고, 그런 것들을 이제 직접적으로 눈으로 보고 아이가 그렇게 크는 걸 보니까 공주라는 그 도시에 호감도와 매력들이 계속해서 커졌던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학교를 가까이 다녀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기억이 없이 학교가 다 멀었고 대학마저도 꽤나 멀리 통학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다녀야 하나라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아이들이 당연히 이렇게 가까이서 걸어서 학교를 간다라는 그런 개념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불편함을 겪더라도 어떻게 보면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을 덜어내고 생각하면 정말 공주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학원이 없다는 의견들도 (도심이 아니고선 학원이 없거든요) 저희 집 근처에도 학원이 없어요.
그래서 대신 그것들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방과 후 학교가 생기고 이런 기회를 이제 나라에서 주다 보니까 저는 오히려 공주라는 도시가 학생들 적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세종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방과 후 교실을 운영을 하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가지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학교에 뭐 10명이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데 4-50명이 신청해 가지고 떨어지면 사교육을 더 시켜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사교육이 늘어서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공주는 그런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충분히 아이들마다 경험을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너무 공주를 작가와 예술 활동가로서의 바라본 시점이 아니라 육아의 최전선에서 해석하고 생각했어서 너무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을까요(웃음)
물론 공주가 이런 역사가 있고 문화유적도 많고... 그런 도시인 거는 저도 너무 매력적이죠. 누구나 알고 계시기도 하고... 매력적인데 육아의 입장과는 정 반대로 공예 작가로서 이미 작가분들이 공주에는 너무 많아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한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주가 품고 있는 헤리티지와 그런 것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결국은 그래서 작가분들도 포진이 많이 되어 있어요. 역사도 오래된 그 도예촌이라든지 뭐 충남의 다른 지역에 계시는 작가분들도 포진되어 있으니까 그런 분들이 다수 계시는 거에 이제 비례해서 어떤 프로그램이던지 지원에 있어서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저는 그게 매력이 될 수 있다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분들 사이에서 뭔가 제 작품이 기억이 되고 인정이 받는 순간이 또 기회가 되면 더 감동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공주는 이제는 뭐랄까, 기성 작가분들의 그런 기술적인 면은 너무 이제 더할 나위 없이 고도화되어 올라오셨는데, 그를 뒷받침하는 아이디어적인 면에서의 포화된 시점에 작업의 난이도 부분에서 너무 극한을 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참여와 상품개발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 있으실까요?
유구에 직접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발달된 도시라는 느낌보다는 읍규모의 작은 마을임에도 엄청 매력 있거든요. 처음 유구에 자료 조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섬유 전시관 같은 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구인견에 대해서 이렇게 힘을 쏟으면서도 전시의 구성이나 도시 자체적으로 이제는 힘이 많이 약해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알아보면 볼수록 시간이 지나 회색으로 빛바랜 것 같지만 아직 그 시간 속에 색동과도 같은 그 색을 결코 잃지 않았다고 보게 되었어요. 인견과 색동으로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상품을 낼까 고민을 많이 하면 '괴불 장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비전을 품고 계신가요?
저는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소박한 생각인데, '호호당'이나 일본의 '소우소우'와 같은 매력적인 브랜드들이 많이 생각이 나네요.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걸 잘하는 브랜드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우소우'에서는 기모노 같은 전통 의상을 지금에 맞게 바꿔가는 것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처럼 '느루지기'도 이런 브랜드처럼 꾸준 조금씩 성장해서, 단순히 단기간에 성공한다기보다는 제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게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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