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공주인형극단' 이지윤 방문요양사의 이야기

오근수
2024-11-16






"어르신들의 곁에서, 정성과 인내로 함께하는 방문 요양사의 이야기“

 

Q : 현재 직업은 어떻게 되는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공주시 옥에 사는 예순네살의 방문 요양사입니다. 이지은입니다.

 

Q : 저희가 편하게 대화할 때 직업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다시 한 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르신들 돌보는 일을 하는데요. 어느 때는 어르신들이 귀엽기도 해요. 그런데 TV에서 보면 요양 시설 직원이 폭행당하는 뉴스 같은 걸 보잖아요. 그런 걸 보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해요. 왜냐하면 아프신 경우엔 어르신들이 재정신이 아닐 때가 많거든요. 그러면 욕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고, 때리기도 하세요. 그런 상황을 막다 보면 더 큰 일이 생길 수도 있죠.

 

오늘 같은 경우에도요, 저희 어르신이 안좋은 등급의 환자이신데, 몸 상태를 보니까 발진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상처를 치료해드리려 보니 설사를 하신 거예요. 그걸 해드리려니까 욕을 하시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Q : 괜찮아요. 편집하면 되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정말 어르신이 욕설을 퍼붓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하죠. 하지만 어르신들도 그만큼 힘드시니까 그러신 거라 이해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건 나쁜 말이에요"라고 말씀드리면, 또 안 하시기도 해요. 정말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아요.

 

시설에 계신 분들이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마음이 많이 상하실 텐데,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면 어르신들을 더 잘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Q : 지금 방문 요양사로 계시는데, 주로 집으로 방문하시죠?

 

네, 직접 집으로 가서 하루에 네 시간씩 돌봐드려요. 한 달에 25일 정도 일하는데, 목욕은 다른 분이 오셔서 도와주세요. 그래서 밥도 챙겨드리고, 휠체어로 옮겨드리기도 해요. 아버님이 많이 도와주시는데, 어머님 체격이 크셔서 혼자 하시긴 어렵거든요.

 

제가 그런 일을 하면서 참 감사한 순간들도 많아요. 어떤 어르신은 저를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데, 그런 말씀 들으면 힘들었던 게 다 잊혀져요. 예전에 한 어르신은 오월에 대전에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분 아드님께서 "선생님 너무 잘해주셨다"고 고맙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보람을 느껴요.

 

사실 어르신들이 처음엔 반찬을 안 드시고, 밥도 잘 안 드시려고 하셨는데, 제가 조금씩 방법을 바꿔가며 챙겨드리니까 점점 좋아지셨어요. 예를 들어, 계란말이를 해서 미리 조금씩 드리거나 두부를 드리면 드시더라고요. 그런 소소한 변화가 참 기뻤어요.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쉽진 않지만, 저에겐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귀엽고, 또 정이 많이 가요.

 



"배움과 나눔으로 이룬 여정, 방문 요양사의 따뜻한 발자취"

 

Q : 방문 요양사를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제가 봉사를 하다가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방문 요양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됐죠.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직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 전에는 대한노인회에서 강사로도 활동했어요. 프로그램 강사로 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 같은 걸 했죠.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사실 봉사를 하다 보니 필요한 게 많아서 이것저것 배우게 되었어요. 스포츠마사지 자격증도 땄고, 마술이나 웃음치료 같은 것도 배웠어요. 제가 뭘 배우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다 저한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 미용사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몇 년 정도 하셨어요?

 

1994년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 몸이 아프면서 그만두게 되었죠. 그런데 그 시절에도 미용기술로 봉사활동을 했어요. 어르신들 머리를 손질해드리거나, 필요한 분들께 봉사로 도움을 드렸어요. 제가 아파서 쉬어야 할 때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손이 가더라고요.

 

Q :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셨네요. 어떻게 그런 동력을 가지셨어요?

 

제가 뭘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아플 때도 가만히 있지 않고 침을 배우거나 소화기능을 돕는 방법들을 배웠어요. 그리고 그 배운 걸 다 써먹을 수 있었어요. 결국 그게 제 삶의 에너지가 되었죠. 배운 걸 남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했어요.

 

Q : 강사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느 날 다른 강사분이 나이 들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나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어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던 거죠.

 

Q : 그렇게 강사 일을 접고 지금은 요양사로 일하고 계신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어르신들께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처럼 꾸준히 제 역할을 해나가면서 제 자신도 더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자연과 추억이 깃든 고향 이야기, 공주와 쌍대리의 풍경

 

 

Q : 저는 공주 토박이인데요, 마곡사에는 두세 번밖에 가보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소풍을 많이 가긴 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나무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 궁금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곡사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남자가 여자를 안아주는 듯한 나무가 있었어요. 손가락 모양까지 다 보일 정도로 생생했죠. 그런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거기 간 지 오래되었거든요. 또 갑사로 올라가는 길에도 비슷한 나무들이 있었어요. 당시 침을 배우면서 민간요법에 관심이 많아 나무들을 유심히 보곤 했습니다. 특히 애기똥풀이 약초로 쓰인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흔한 풀인데도 약초라니 신기했죠.

 

갑사 중간쯤 올라가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조각처럼 보기도 했어요. 또 어떤 교수님은 "여기 정말 특별한 곳이 있다"며 저희를 안내해 주셨어요. 그 밑에는 물도 흐르고 있었는데, 정말 독특한 나무였죠. 공주에 이런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홍보가 부족한 게 아쉬워요. 통영처럼 특색 있는 자연물을 잘 활용해 홍보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Q : 신풍 쌍대리에서 태어나셨다고 하셨는데, 그곳 풍경은 어땠나요?

 

예전에는 추석 때 쌍대리를 방문하면 너무 예뻤어요. 가을에 황금빛 논이 펼쳐져 정말 장관이었죠. 담배 말리는 건조장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놀기도 했어요. 담배 잎을 엮어서 말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런 풍경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뽕나무와 담배 잎으로 목돈을 마련하곤 했죠. 이젠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렵네요.

 

또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자주 갔어요. 왕릉 발굴 현장도 방문했는데, 그때의 흙 냄새와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학교마다 특색 있는 견학 프로그램이 있었고, 저희는 양송이버섯 재배지나 누에치는 곳도 방문했어요. 누에를 키우는 과정을 보며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시절에는 놀이도 단순하면서 즐거웠어요. 겨울이면 얼음판에서 썰매를 탔고, 비료 포대에 지푸라기를 넣어 미끄럼틀처럼 사용하기도 했어요. 요즘처럼 위험하지 않아서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곤 했죠. 그렇게 단순한 놀이지만 다 같이 어울려서 참 즐거웠어요.

 

 



공주의 정서와 매력을 이어가며, 변화 속에서도 따뜻함을 지키자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지만, 옛날의 정서와 이웃 간의 정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고, 나눔도 흔했죠. 어르신들께도 항상 "옆집에 순이 할머니 잘 계신지 문 두드려 보셨나요?"라고 여쭙곤 해요. 그런 소소한 정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주 지역의 풍경과 역사, 그리고 정서가 살아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공주의 매력을 더해줄 테니까요.

 

공주에서 살며 느낀 점을 생각해 보면, 공주는 제 인생에서 동반자 같은 곳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세종시가 좋다고 얘기할 때도 저는 공주가 더 좋아요. 세종이나 대전과 비교하면 공주는 정감이 있고 편안한 매력이 있거든요. 비록 화려하거나 발전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저는 그 점이 오히려 공주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공주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축제가 많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전주 한옥마을처럼 집중적으로 구성된 관광지가 아니라 너무 분산되어 있거든요. 재민천, 무령왕릉이나 공산성처럼 서로 연결된 장소들이 있지만, 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이동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어요. 게다가 게스트하우스나 숙박시설이 부족해 머무르기가 어렵죠. 한옥 숙소나 모텔이 있긴 하지만 예약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이런 점들을 보완하면 공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산성 주변도 마찬가지예요. 운동 코스로는 좋지만, 매점 하나 없이 불편한 점이 많아요. 예전에 공산성 입구에 작은 매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관광객들이 필요할 때 물 한 병 살 수 없는 환경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88년도에 겪었던 공주의 물난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그때 집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큰 고생을 했었죠. 냉장고가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까지 보았으니 말이에요.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웃 간의 도움과 정이 넘쳤던 게 공주라는 도시의 특별한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소박한 무대와 안정된 공간, 공주 문화의 내일을 위한 바람

 

 

Q : 현재 공주의 문화적 행사와 관련된 바람이 있다면?

 

소규모 버스킹 공연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대학생이나 일반인 누구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꼭 대형 축제나 음향 장비가 필요한 공연이 아니어도, 간단하고 소박한 공연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공주 인형극단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현재는 시니어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에요. 연습을 하거나 소품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마곡사 근처 하우스를 임시 보관소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한계가 있어요. 안정적인 공간이 있다면 단원들의 활동도 더 활발해지고, 공주를 알리는 데 더 기여할 수 있을 텐데요.

 




공주는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예요. 이곳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선 홍보와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주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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